2009년 7월 26일 일요일

황산

아멜리 노통, 잊혀져 가고 있다 생각이 들면 어느사이엔가 사람들의 생각에 비수를 꼽고 있음을 알게된다.

방송국에서 프로젝트를 구성한다. 길에서 임의적으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형무소를 안에 집어넣고, 그 사람들을 방송으로 보여준다. 하루가 지난날 아침에는 처형 할 사람들을 간수들이 가려낸다. 언론에서는 이 방송에 대해 비판적 경고를 한다.
신기하게도 언론이나 TV에서 이 형무소 프로그램에 대해서 말을 하면 할 수록 시청률은 올라가게 되고, 나
중에는 침묵하는 것만이 이 비윤적인 방송을 잠재우는 수단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방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찬성을 던지고, 관심이 없던 사람들 조차도 이 비판속에서, 관심을 갖게 된다. 이 비윤리적인 형무소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자위하려는 듯한 이유를 댄다.

형무소 안에서 스타(파노니크)가 탄생한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었으며, 뛰어난 지성을 갖고 있다. 이 미모와 지성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것인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무언가로 차 있는 사람으로 비유되어지는 그녀는, 형무소 안에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지성이 말하게 들렸다. 그녀의 하나하나들은 심지어 카포(간수)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쳐, 그녀를 갈망하는 사람도 존재하게 된다.

이 방송은 발전에 하여 쌍방향 방송을 위한 사형인 선출자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신의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한 건 바로 그의 부재가 명백할 때이다.”

수용소 안에서의 현실은 이것을 지극히 깨닫게 해주는 장소였다. 신의 부재를 느끼는 파노니크는 자신이 신의 자리를 대신 할 수 없을까하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신의 자리를 대신 할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악은 이미 저질러 졌다. 창조가 이루어진 다음 인의 임무는 자신이 창조한 것들에 대해, 애정을 쏟는 일 뿐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서 이제 더이상의 수정을 가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이 것은 마치 소설가와 같은 입장에 있다. 그들이 써놓은 작품들은 한없이 비판을 받는다. 작가는 이 상황을 보면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바꿀수 없는 작품에 대해서 독자들은 끊임없이 비판을 한다.
자신이 써논 것들에 대한 사랑하는 것이 자신에게 제일 좋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