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8일 일요일

친구가 말했던 이황

100년도 훨씬 전에 우리 나라는 성리학의 질서를 운운하면서, 새로운 서학(양명학)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시작했다. 양반들은 조선이 망한다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고, 서학(양명학)을 접한 사람들을 색출해서 죽이기 시작했다.


정작, 나라가 무너지는 이유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의 서민에 대한 수탈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간과하고 꾸준히 서민들의 수탈을 계속해 나갔다. 3정의 문란은 조선을 무너뜨린 원인이 되었다.
성리학적 질서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양반의 수탈을 견디지 못한 서민은 외세가 침범해와도 수탈을 당하는 자신들은 똑같을 꺼라 생각했다. 조선이든 외세든 어차피 뜯기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여겨지면서, 외세가 침범해 와도 오히려 환호하는 상황이 연출이 되었다.


양반들은 꾸준히 성리학적 질서가 무너진다며, 척화비를 세우는 등 이념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결국에는 서민들의 패배주의가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


이 서민들은 계속 이제는 패배주의를 양쪽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다.


참고로, 서학(양명학)을 비판 했던 인물로 유명한 이황이 있다. 누구의 말을 빌자면, 이황이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했던 인물이라고 말할수 있다.
조선의 양명학 도입 부분의 내용 ...조선시대의 양명학